2025년 5월 3일 오후 9:31
오렌지빛 노을이 손을 뻗어 머릿결을 쓰다듬고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인다.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이으며 하늘에 어둠이 사르르 퍼져나간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공기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줄 별이 하나둘씩 반짝이기 시작한다. 은은하게 자신을 뽐내는 달 주위로 별들이 손을 잡고 춤춘다.
낮 동안 색색 잠에 들다가 본인들의 시간이 왔다는 듯 즐거운 별 무리의 무도회가 밤하늘에 펼쳐진다. 어두워져야 비로소 밝게 빛을 내는 그 모습에 암흑과 찬란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걸까, 생각이 든다. 한 가지만 존재할 때에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 수 없기에. 상반되는 다른 존재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기에.
인생도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행복한 일과 고난이 함께 닥쳐온다. 그리고 고난이란 것이 있기에, 그 시기가 지나면 행복한 삶이란 게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사이 한 단계 성장해 이전보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수평선 너머에서는 해가 떠오른다.
그대는 나의 태양이다. 그 눈 부신 햇살을 뻗어, 어둠에 빨려 들어간 채 감옥에 속박된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당신을 붙잡자 절망의 수풀에서 빠져나와 윤슬이 심장 박동처럼 요동치는 바다에서 눈을 뜬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들고 서로 부딪혀 깨지며 사랑의 언어를 외쳐댄다.
이 화폭에 어찌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다 담을 수 있을까. 입을 열다가도 다시 다문다. 마음이란 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마다 고뇌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조용히 당신을 나의 심장에 담는다.
2025년 5월 3일 오후 10:45
눈을 감고 침묵이 몸을 감싸는 순간을 받아들인다. 나는 동굴 속에 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벽을 타고 멀리 울린다. 울림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옅은 물안개가 인사하듯 스치고 지나간다. 천장에 매달린 돌에서 맑은 물방울이 톡톡 떨어져 허공의 조각이 된다.
미끄러운 이끼가 한 번씩 발을 붙잡으며 장난을 친다. 삐끗거릴 때마다 이끼가 웃음 짓는 소리 같다고 생각하며 계속 걸어간다. 발이 향한 곳에는 거대한 호수가 천장 틈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빛줄기에 몸을 내맡긴 채 행인을 맞이한다. 바깥으로 바람이 통하는 틈새에서 작은 나뭇잎이 방문해 날아와 호수로 조용히 떨어진다.
호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춘다. 내 표정을 숨길 수 없다. 거울처럼 모든 움직임을 따라 하며 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끝없는 투명함에, 나의 깊숙한 곳에 종잇조각처럼 꾸깃 뭉쳐 넣었던 부끄러움들이 다시 활짝 펼쳐져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모난 그림자를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게 느껴진다. 지울 수 없는데도 지우려 노력한다. 다시금 시선을 돌리며 외면하고 싶지만, 깊은 호수는 말없이 기다려준다. 나는 그 기다림에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며 과거를 마주한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물에 비치는 내 형상을 포옹하듯 호수에 뛰어든다. 그렇게 나는 눈을 뜨고 당신을 본다. 호수처럼 나를 비추는 당신을.
2025년 5월 4일 오후 10:48